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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잡소리..


Date : 2008/11/09 05:10   Category :
신변잡기

내 회사가 아닌 남의 회사를 다시 다니기 시작해서 세번째 월급을 받고
네 번째 월급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돌아왔다.

척박하게 돌아가는 경직된 조직의 일상은, 언제나처럼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조직의 모습은 아니다.

내 나이 서른 넷의 마지막 계절을 보내고 있지만,
내가 꿈꾸는 것이...
철딱서니가 없는 것이지..애들이 그렇게 이야기 하듯이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는
몽상가적인 발상일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이 굳이 틀렸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모르겠다.
내가 미친듯이 금속공예와 또 그 작업에 인생에 모든 것을 걸고
굶주린 배에 대한 공포감없이, (아니 어떤 면에서는 나의 배에 대한 공포라기 보다는 나를 둘러싼 내 혈족의 배에 대한 공포가 더 적합한 것 같다.) 또는 그 배고픔 자체를 시니컬한 비웃음으로
쉬이 넘길만한 정도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또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본부장님, 과장님이라는 호칭보다는
김선생님, 박교수님 같은 호칭이 더 입에 올리기 쉬운 자리였을까?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아직 미혼일 확률이 높은데다가, 세단형 승용차 보다는 아마도 suv나 혹은 픽업트럭 같은
차를 갖고 있겠지..면바지보다는 아마도 주머니가 많은 군용바지를 더 선호했을지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간에..

나란 사람을 보고 있자면,
그닥 인간미는 출중히 갖추지 못한 반면 인간을 좋아하기는 한다.
어떤 면에서는 나에게 없는 것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랄까..
혹은 중학생 시절 교회에서 인기투표와 진배 없는 간략한 선거로 뽑힌 교회 간부의
신앙적 지향점 혹은 그것에서 파생된 (의도된) 도덕적 책임감 같은 것이랄까?

어찌되었던, 내가 지금도 한때 동업을 하던 대학동기들을
마음 속 깊이 미워하고 있는 이유 역시
인간으로서 믿고 인간으로서 좋아했던 친구들이어서 더더욱 배신감이 컷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내가 무슨 시한부 판정이라도 받지 않는 한...그 미움은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이라기는 뭣하지만
대체적으로 조직은 .. 아니 조직이라는 단어를 쓰기 좋아하는 회사는
"재미없다." 또는 "인간적이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뭐 회사가 "재미있어야" 하고 "인간적이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일","워크","잡","업"등등에 대해서 스무살 때나 서른 네살 때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철칙은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함께하는 대상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위한 진정한 목표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고로 "일","워크","잡","업"에 있어서 "인간"이 빠진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고전을
서대문구립 도서관에서 5학년때 처음 읽고 난 뒤 (영어 공부에 대한 열망이 큰 나머지...내용은 읽혀지지도 않아서..) 다시 같은 자리에서 중1때 다시 3번을 읽었다..

첫째로는 영어 때문에. 둘째로는 그림 때문에, 세째로는 읽다 보니 너무 고민이 많이 되서..

선생님이 교과목마다 바뀌는 중학교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던
까까머리 중1 때 쯤에는 누구를 짓밟고 그의 위로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고민조차도 될 수 없는 넌센스적인 시츄에이션일 뿐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러지 않을 거고, 내 친구들은 내가 죽을 때 까지 나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1%의 고민도 없이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저런 사람들은 언제나 권선징악.. 천벌을 받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네살의 나는 어떤가?
지금의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나로 인해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게
일상다반사가 되다 보니...도무지 이게 상처를 주는 건지 상처를 받는건지 조차도 잘 모르게 되었다.

내가 있는 이 "조직"은..
대체적으로 인간미가 없다.

입안에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도 너무너무 많다.
웃긴 것은 칼 맞은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았는지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어필하지도 못한다. 아니 어필자체가 아니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는지 조차
모르는 것 같다.

이게 살아남기 위한 "조직" 내부의 생리인가?

하기사..
나 같은 사람은 입바른 소리 찍찍하다가 동업자로 있는 동창들에게도 팽당하기도 했는데
심지어 퇴근하고 나면 남인 이런 조직에서야 오죽할라고..

그런데..참 웃기지 않은가?

자신이 이때까지 열심히 살아 왔다는 자부심이 있다면
아니아니..자신이 뭐를 위해서 일을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왜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피력하지 못하는가?

이러한 상황 외에
반대인 사람도 더러 있다..

역시 중학교 저학년 시절에 읽었던 "벽"이라는 국/영문 혼합 단편 소설이 있는데..
역시나 영어와 일러스트에 끌려 읽게 되었다가 뇌리에 박혀버린 소설이다.

회사생활을 너무 방어적으로만 하다 보니..
깍쟁이...라기 보다는 재수없는 종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나우..지금..현재 그 "조직"이라는 곳에서 내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상당히 많다.

언젠가 프랑스로 축구하러 간 "축구 천재 박주영"의 기사가 스포츠면에 실렸는데
제목이 스포츠면에 실리기에는 꽤나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있어 기억이 난다.

"이타와 이기 사이"

비단 11명이 뛰는 축구에서만 고민되는 주제가 아니라..
이것은 인간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도 매우, 심각하게 고민되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결론은..
상황이 설명해 준다면 "인간이기에 이해가 가는 부분"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는 것이다.

동료가 너무 아파 결근을 하는데 동료의 건강을 먼저 걱정하는 것이,
동료가 쉬게 되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더 많은 일거리를 걱정하는 것보다 먼저인 것이 인지상정이 듯..

팀과 팀의 일이 업무적인 선을 최대한 지켜가며 서로에 대한 월권없이
주장보다는 조율을 먼저 진행해야 마땅한 일일 것이지만......

실제로는 한 순간 "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신뢰도 인간에 대한 애정도)
아주아주 짜증스러운 결과를 갖고 오기도 한다.

내가 최근들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몰라요" 다

이 말에 뜻은
1. 내 일이 아니어서 몰라요.
2. 당신이 어떻게 되든 나는 몰라요.
라는 것이다.

조율을 하고자 함에 있어 상대방이 "몰라요" 해버리면 그건 "무관심"을 갖고 상대방이 일방적인 "관철"을 해 버린 것이다. 물론 "무책임함"이 수반된 "사후 제반 리스크"까지 모두 상대방은 갖고 가야 된다.

그 친구는 사람도 좋았을 뿐 아니라 생각이 깊고 일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괜찮은 동료라 생각했지만
그 일 이후로는 내가 아는 사람의 범주에서 지워졌다.
이유는 단지 머리(사고와 지성)와 입(발화수단과 협의능력)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지성적 판단을 스스로가 기피해버린 비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지사지..
그 친구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를 그렇게 되기까지 정신적인 고통을 지속적으로 가해온
우리 팀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업무 외적으로) 이러한 반목을 없애보고자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자처하게 되었는데, 결국 지난번 사건으로
나는 양쪽으로 상처를 받게 되었다. (또한 양쪽으로 상처도 주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앙?
모든 죽어가는 것은
현재 모든 살아있는 것 아닌가?

뒷 건물에서 잠 못자게 짖어 대는 개새끼도,
힘들게 잠을 청한 침대 위 귓가를 앵앵 거리는 모기새끼도,
옥상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역겨운 다크브라운의 포스를 작렬하는 바퀴새끼들도,
내가 친동생처럼 혹은 불알친구처럼 그렇게 아끼고 사랑했지만 한큐에 뒷통수를 쳐 버린 내 대학동기들도,
업무라는 것 자체를 벗어나 사람으로, 동료로 가까워 질 수 있었지만 "몰라요" 한큐에 뻑이 가게 만든 그 냥반도... 모두 다 죽어가는 것들인데.. 이 것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냐는 말이다.

말도 안돼..

어찌보면
이 사회에..
"감동"이라는 것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는 구성원들이 점점 없어져 가기 때문 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프로슈머마케팅이 뜬다지 않나..(물론 벌써 몇년 된 거긴 하지만)
체험을 해 봐야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안다. (난 사실 종종 감동한다. 소인배라 잘 감동받는 성격이다.)
사회가, 조직이, 회사가, 사람사이가
구워지는 스테이크의 유즙이 육질 사이사이로 고소한 맛을 갖고 퍼져 가듯이
그렇게 맛있게 퍼져가려면 감동을 체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누군가는 적어도 감동을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감동 좀 나눠 주면 되지 않을까?

일단...
돈있는 사장님들부터 한번
감동적인 회사 한번 만들어 보시구랴..
말아먹지 않는 조건이외다...(급여수준도 감동의 일부분이 되는 거니깐..)

뭐야 ....
새벽 5시가 넘었네..

블로그는 이런거 ... 논리나 구조에 맞춰서 안써도 되....(라고 자위하며)
난 그저.. 잠이나 다시 청해야겠어..

모두들 굳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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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사진


Date : 2008/10/13 22:51   Category :
신변잡기

사진쟁이 성문이 찍어준 간만에 설정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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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hat은 재미있다.


Date : 2008/06/30 10:09   Category :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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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프로를 사고 나서 처음으로 아이쳇을 해 보게 되었다.
이거 물건이네.....

맥 특유의 깔끔한 인터페이스는 물론이거니와
가볍고 성능좋은 메시징환경은
다른 인스턴트메신저들에게서는 쉽게 찾기 힘든
강력한 매력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다가....좀 심심하다 싶으면
서로 웃길 수도 있고 말이다..ㅋㅋㅋㅋ

부트캠프로 윈도우 깔아 놓고 패러렐도 깔았지만..
이상하게 xp를 잘 안쓰게 되는 이 강력한 매력의 레오파드는
이제사 맥으로 옮겨탄 것을 아쉽게 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미지, 웹 편집 툴들이 없으니 원..
이건 업무용이라기 보다는....
장난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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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oolyool

tag 태그 ::   ichat, macbook pro, 아이쳇  
   

2008년 어버이날 전날


Date : 2008/05/08 11:33   Category :
신변잡기

꽤 맑았던 날씨가 아침부터 꾸물럭 거리는게
현재의 내 기분 같았다.
8시 30분에 진료예약을 해 놓았지만
우리 부부는 8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를 끝냈다.
아내는 시간이 없었는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오래간만에 안경을 썼다.
꾸미지 않은 그녀의 얼굴을 보니
한층 더 초췌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뚝섬에서 을지로에 있는 제일병원으로 가는길은
내가 꽤나 싫어하는 왕십리길을 지나야 한다.
차가 너무 많고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도 많다.
시계를 흘끔흘끔 봐가면서 밀리는 차들 속에서
나는 잠시 아내의 손을 잡아보았다.

괜찮다, 당신만 건강하면 된다.

우리 부부가 처음 겪는 유산은
정신적으로..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혼 후 2년이 되어서야 가진 아기에
태명으로 "손"이라고 지었었다.

내 전공인 금속공예.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힘과 에너지, 상상력의 원천.
그 "손"을 닮은 아이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잘 때마다 사랑한다고 되뇌였고
어떤 녀석일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아내가 임신한 소식을 알려왔을 때
옥상의 화단에 고추와 토마토를 심고
딴에는 아이와 함께
정성스럽게 열달을 키워보자 생각도 했었다.

아내는 지인들에게서 아가옷이며 젖병등을 받아와
어떻게 입힐지 입으면 어떨지를 서로 이야기하며
행복한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8주가 되어 들었던 손이의 심장소리는
너무너무 우렁찬 감동이었으며
초음파 모니터 속의 번쩍거리는
작은 심장은 내 삶이 꼭 저 것을 위해 있었던 것 마냥
진한 충격과 감동이었다.

제일병원에 도착해 서둘러 검진을 받았다.
벌써 세번째 확인이다.
사실 마음은 반반이었다.
살아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살았다면 건강해야하고
아니라면 아내만이라도 건강하면 된다.

계류유산.

의사는 흔히들 있는 일이라며
몸조리에 각별히 유의할 것등을 당부하고는
황급히 진료를 마감했다.

너무나 기계적인 절차들..

기계적인 수속을 마치고 난 후
다시 한번의 희망을 위해
집근처 최차혜 병원을 찾았다.
오는 차안에서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하늘에서는 곧 빗줄기가 쏟아질 것 같다.
5월의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을씬년스러웠고
날씨마저 나를 조롱하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예상했던 답변과 또한번의 기계적인 절차..
아내는 결심이라도하고 온 듯
소파수술을 바로 신청했다.

나 역시, 그 죽은 생명을 언제까지
뱃속에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 답답했지만
덜컥 수술신청을 한다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프론트에서 나를 부른다.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
이런 것까지 동의서를 쓰나..
위험한 건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름을 적는다.

접수를 위해 수납대로 갔더니
40만원이라고 한다.
40만원?
왜 40만원인지 물어 볼 겨를도 없었다.
카드를 내며 결제를 요청하니
난색을 표한다.
정부에서 권장하지 않는 시술이기 때문에 그렇단다.
불쾌했지만, 갖고 있는 현금도 없기에
무작적 카드로 계산을 하겠다 우겼다.

기분이 이상해서 수납대에 있는 다른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낙태수술은  권장사항이 아니라한다.

낙태?

머릿속의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낙태같은 소리하고 있네.
애가 죽어서,
내 애가 죽어서 장례치르러 왔다.
이 인간미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기계적인 인간들아!

머릿속의 욕들을 채 밖으로 끄집어 내지도 못하고
똑같은 말만 뇌까렸다.
유산이예요. 계류유산이라고 해서 소파수술하러 왔어요.


하늘은 드디어 빗줄기를 토해낸다.
한여름 장마같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수속을 마치고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난 뒤
종로 귀퉁이 3류 여관방 같은 방으로 인도된다.

인적이 없었는지 방은 차디차고
좁은 침대하나와 낡은 티비, 선이 끊긴 에어컨이 있다.
아내는 하얗게 얼굴이 질린채
의료진이 시킨대로 옷을 벗고 환자용 가운으로 갈아 입는다.

얼마간의 정적.
덜그럭거리는 방 밖의 수술실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린다.
아내는 눈을 감고 누워있고
창밖 5월의 비는 거세게 내리친다.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은 찬기운이 을씬년스럽게 밀려왔고
우리는 아무말 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한 간호원이 아내를 부른다.
불리운 아내는 간호원을 따라 나간다.
이럴땐 뭐라고 해줘야 하는지..
머릿속이 깜깜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내는 뒤 한번 안돌아보고,
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아내를 배웅나간다.
곧 3류 여관방스러운 문이 눈앞에서 닫힌다.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큰 수술이 아니라고 누가 그러든가..
모르겠다.
규모가 큰지 작은지는 둘째다.
이 비참한 상황과 광경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도축당하는 짐승 같다는 생각에
매우 불쾌하고 화가났다.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못하는 아내가
내내 눈앞에 떠올라 괴로웠다.



피지컬적인 시계는 20분정도였지만
내게는 20년도 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똑똑똑
급히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정말로 못 볼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독약냄새와 함께 아내는..
함께 갔던 간호원의 부축을 받고 서 있었고
머리는 온통 헝클어져 몸은 부들부들 떨며
나즈막한 신음소리를 연이어 뱉어 냈다.

황급히 아내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고
간호사의 주의사항을 듣는 둥 마는 둥
이불을 꼼꼼히 덮어 주었다.

고통에 신음하며 부들부들 떠는 아내의 모습에서
보지 못한 자식을 떨구어 버린 어미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우리가 그렇게 밤마다 사랑한다 말해주던
그 얼굴이 궁금해 마음 속으로 수백번도 넘게 그려보았던
그 손이를 스테인레스 통으로 떨구고
고통과 상실감으로 몸부림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부들부들 떠는 아내를 보는 내 마음은
참담...그 자체였다.

속절없이 비는 그치지 않고 더욱 세차게 내렸고
3류 여관방 같은 회복실은 어느 우울한 드라마에서 보던
세트의 풍경같았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다...

아내는 성치 않아보였지만
이 곳을 나가자고 한다.
나 역시 그저 이 곳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몸이 움직일만질 때쯤
비도 그쳐갔다.

인간적이지 않은 이 상황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내를 차에 앉히고
온풍을 튼 채로
우리는 그렇게 쏜살같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첫 아가는
심장소리의 추억만 남기고
쉬이 우리를 떠났다.
그것도...어버이날 전날.

2008년 5월 7일

우리 손이..사랑한다.
언젠가 네 동생이
우리와 함께 하겠지만..
잊지 않겠다..

네 어머니의 고통의 떨림도
그 날의 하얗게 질린 얼굴도
잊고 싶지만 잊지 않으마..

좋은 곳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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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태그 ::   유산  
   

부모


Date : 2008/04/03 01:30   Category :
신변잡기

두 번의 사업실패로 아버지는
환갑무렵에 "자신감"이라는 것을 잃은 듯 했다.

퇴계원에 작은 아파트 하나와
아직 남아 있는 아파트, 자동차 대출금.

아버지는 요새 무슨 인터넷 까페 운영자가 되셔서
자신의 프로필에 쓸 사진을 찾고 계신 듯 했다.

자신감을 잃고 노년에 접어들어
"쉼"을 간구하는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아직도 생활전선에서
투사처럼 억척스럽다.

아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
물건들을 팔아보고자
어머니는 밤 늦게까지
작은 아들이 쓰던 좁은 방에서
미싱을 돌리신다.

하지만
아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은
처절하리만큼 매출이 없다.

일요일
교회를 다녀온 뒤
모처럼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도
돈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헛헛한 웃음을 머금고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말씀하셨다.

"너무 돈,돈 하지마라..인생 다 갔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도 이해가 된다.




아내가 퇴근 후 다니는
신촌의 요리학원에서
아내를 픽업하여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와 앉았다.

임신한지 4주 정도 지난 아내는
요즘 부쩍 잠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다.

오늘은
4월 치고는 날이 꽤 추워서인지
보일러 꺼 놓은 집이 유난히 을씬년스럽다.

아내는 털 양말을 주섬주섬 신는다.
양말에 엄지발가락이 살짝 보일 정도로 구멍이 나 있다.

아내의 양말을 꿰메면서
문득 어린 시절을 떠 올려 보았다.

나는 사실 양말을 잘 꿰메는 편이다.
구멍이 크게 뚫려 있는 양말도
선으로 구성된 면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어릴적부터 양말을 꿰메어 신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 때는 다들 그렇게 신었지만
특히 우리집은 꽤나 어려운 살림때문에
안꿰맨 양말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교회 수련회에 갈 때는 정말
낡고 헐어도 좋으니 제발 꿰맨 양말은
죽어도 신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천에서 서울의 지하실 단칸방으로
네식구가 이사왔을 때

살림밖에 모르던 전업주부 어머니는
교회 전도사집의 파출부로
견실한 토목회사의 중간 간부급이었던 아버지는
벽돌짐 지는 막노동판으로
식구들이 그렇게 내몰리듯
전쟁터 같은 삶의 현장으로 쫒겨 났다.

그간 외할아버지, 할아버지, 외삼촌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악재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정말
불도져같이 일을 했고
나와 동생은 특별히 가난이라는 것이 뭔지
피부에 느껴지는 것 없이 자랐다.

단지,
부반장이었던 친구의 엄마와
학습부장이었던 친구의 엄마가
빛 한 줄 들어오지 않는 우리집에 찾아와
스승의 날에 선생님 선물을 사야된다고
반장 엄마였던 우리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럴 돈이 어딨냐며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던 일이 기억나고

엄마가 파출부로 나가던 교회 여전도사 남편이
무슨 병원 의사였는데
뇌염예방접종 주사비가 솔찮아
엄마가 부탁부탁해서 그 집 아저씨에게
주사를 맞고 확인증을 떼어 갔던 일도 기억나고

평소에 육류반찬을 못해주던게
마음이 아팠던 엄마가
파출부를 그만 두고 나가던
"오성족발"이라는 시장통 족발집 구석방에서
동생과 나를 불러 족발을 억지로 먹이던 일도 기억나고

친구네 집에 갔을 때 봤던
만화 손자병법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친구가 빌려주지 않자 너무 짜증이 나서
엄마에게 손자병법 사달라고 했는데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에게
어떻게 구하셨는지 헌책방에서
정비석씨가 쓴 손자병법을 사다주셔서
너무 어려워서 일년동안 이해하기 위해
5번 넘게 읽었던 일도 기억나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핸드메이드 코트를 만드는 일을 하시던 엄마가
고등학교 입학 겸 생일 선물로
바느질해서 번 돈으로
전자기타를 사 주신 일도 기억이 난다..


그것이 "부모"라는 존재의 위대함인가...

곧 아홉달 후면
나도 아버지가 된다.

운전하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에 묘한 파동이 인다.

내가.
과연 내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그 위대한
희생을
사랑을
헌신을

내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있을까.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도는 와중에
나는 자꾸 배고파하는 아내를 위해서
고구마를 삶고 당근과 사과를 섞은 쥬스를 만든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피죤을 왕창부어 빨래를 했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에는 귀찮고 아까웠던 일들이
이제는 귀찮지도 아깝지도 않으니..

이것이 시작인 것인가..



가슴이 쨍한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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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ooly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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