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맑았던 날씨가 아침부터 꾸물럭 거리는게
현재의 내 기분 같았다.
8시 30분에 진료예약을 해 놓았지만
우리 부부는 8시에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를 끝냈다.
아내는 시간이 없었는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오래간만에 안경을 썼다.
꾸미지 않은 그녀의 얼굴을 보니
한층 더 초췌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뚝섬에서 을지로에 있는 제일병원으로 가는길은
내가 꽤나 싫어하는 왕십리길을 지나야 한다.
차가 너무 많고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도 많다.
시계를 흘끔흘끔 봐가면서 밀리는 차들 속에서
나는 잠시 아내의 손을 잡아보았다.
괜찮다, 당신만 건강하면 된다.
우리 부부가 처음 겪는 유산은
정신적으로..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결혼 후 2년이 되어서야 가진 아기에
태명으로 "손"이라고 지었었다.
내 전공인 금속공예.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내는 힘과 에너지, 상상력의 원천.
그 "손"을 닮은 아이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잘 때마다 사랑한다고 되뇌였고
어떤 녀석일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아내가 임신한 소식을 알려왔을 때
옥상의 화단에 고추와 토마토를 심고
딴에는 아이와 함께
정성스럽게 열달을 키워보자 생각도 했었다.
아내는 지인들에게서 아가옷이며 젖병등을 받아와
어떻게 입힐지 입으면 어떨지를 서로 이야기하며
행복한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8주가 되어 들었던 손이의 심장소리는
너무너무 우렁찬 감동이었으며
초음파 모니터 속의 번쩍거리는
작은 심장은 내 삶이 꼭 저 것을 위해 있었던 것 마냥
진한 충격과 감동이었다.
제일병원에 도착해 서둘러 검진을 받았다.
벌써 세번째 확인이다.
사실 마음은 반반이었다.
살아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살았다면 건강해야하고
아니라면 아내만이라도 건강하면 된다.
계류유산.
의사는 흔히들 있는 일이라며
몸조리에 각별히 유의할 것등을 당부하고는
황급히 진료를 마감했다.
너무나 기계적인 절차들..
기계적인 수속을 마치고 난 후
다시 한번의 희망을 위해
집근처 최차혜 병원을 찾았다.
오는 차안에서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하늘에서는 곧 빗줄기가 쏟아질 것 같다.
5월의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을씬년스러웠고
날씨마저 나를 조롱하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예상했던 답변과 또한번의 기계적인 절차..
아내는 결심이라도하고 온 듯
소파수술을 바로 신청했다.
나 역시, 그 죽은 생명을 언제까지
뱃속에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 답답했지만
덜컥 수술신청을 한다하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프론트에서 나를 부른다.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
이런 것까지 동의서를 쓰나..
위험한 건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름을 적는다.
접수를 위해 수납대로 갔더니
40만원이라고 한다.
40만원?
왜 40만원인지 물어 볼 겨를도 없었다.
카드를 내며 결제를 요청하니
난색을 표한다.
정부에서 권장하지 않는 시술이기 때문에 그렇단다.
불쾌했지만, 갖고 있는 현금도 없기에
무작적 카드로 계산을 하겠다 우겼다.
기분이 이상해서 수납대에 있는 다른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낙태수술은 권장사항이 아니라한다.
낙태?
머릿속의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낙태같은 소리하고 있네.
애가 죽어서,
내 애가 죽어서 장례치르러 왔다.
이 인간미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기계적인 인간들아!
머릿속의 욕들을 채 밖으로 끄집어 내지도 못하고
똑같은 말만 뇌까렸다.
유산이예요. 계류유산이라고 해서 소파수술하러 왔어요.
하늘은 드디어 빗줄기를 토해낸다.
한여름 장마같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수속을 마치고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난 뒤
종로 귀퉁이 3류 여관방 같은 방으로 인도된다.
인적이 없었는지 방은 차디차고
좁은 침대하나와 낡은 티비, 선이 끊긴 에어컨이 있다.
아내는 하얗게 얼굴이 질린채
의료진이 시킨대로 옷을 벗고 환자용 가운으로 갈아 입는다.
얼마간의 정적.
덜그럭거리는 방 밖의 수술실 소리가 유난히 귀에 거슬린다.
아내는 눈을 감고 누워있고
창밖 5월의 비는 거세게 내리친다.
불을 켜지 않은 방 안은 찬기운이 을씬년스럽게 밀려왔고
우리는 아무말 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한 간호원이 아내를 부른다.
불리운 아내는 간호원을 따라 나간다.
이럴땐 뭐라고 해줘야 하는지..
머릿속이 깜깜했다.
하얗게 질린 얼굴의 아내는 뒤 한번 안돌아보고,
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아내를 배웅나간다.
곧 3류 여관방스러운 문이 눈앞에서 닫힌다.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큰 수술이 아니라고 누가 그러든가..
모르겠다.
규모가 큰지 작은지는 둘째다.
이 비참한 상황과 광경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도축당하는 짐승 같다는 생각에
매우 불쾌하고 화가났다.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못하는 아내가
내내 눈앞에 떠올라 괴로웠다.
피지컬적인 시계는 20분정도였지만
내게는 20년도 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똑똑똑
급히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정말로 못 볼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독약냄새와 함께 아내는..
함께 갔던 간호원의 부축을 받고 서 있었고
머리는 온통 헝클어져 몸은 부들부들 떨며
나즈막한 신음소리를 연이어 뱉어 냈다.
황급히 아내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고
간호사의 주의사항을 듣는 둥 마는 둥
이불을 꼼꼼히 덮어 주었다.
고통에 신음하며 부들부들 떠는 아내의 모습에서
보지 못한 자식을 떨구어 버린 어미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우리가 그렇게 밤마다 사랑한다 말해주던
그 얼굴이 궁금해 마음 속으로 수백번도 넘게 그려보았던
그 손이를 스테인레스 통으로 떨구고
고통과 상실감으로 몸부림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부들부들 떠는 아내를 보는 내 마음은
참담...그 자체였다.
속절없이 비는 그치지 않고 더욱 세차게 내렸고
3류 여관방 같은 회복실은 어느 우울한 드라마에서 보던
세트의 풍경같았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다.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다...
아내는 성치 않아보였지만
이 곳을 나가자고 한다.
나 역시 그저 이 곳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몸이 움직일만질 때쯤
비도 그쳐갔다.
인간적이지 않은 이 상황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내를 차에 앉히고
온풍을 튼 채로
우리는 그렇게 쏜살같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우리의 첫 아가는
심장소리의 추억만 남기고
쉬이 우리를 떠났다.
그것도...어버이날 전날.
2008년 5월 7일
우리 손이..사랑한다.
언젠가 네 동생이
우리와 함께 하겠지만..
잊지 않겠다..
네 어머니의 고통의 떨림도
그 날의 하얗게 질린 얼굴도
잊고 싶지만 잊지 않으마..
좋은 곳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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